2018년 6월 28일, 29일 양일간 영국 베드퍼드 파나세아 박물관 야외에서 계시록 및 천년왕국 운동 연구 센터(CenSAMM)의 주최로 성경 계시 문학, 말세의 대재앙 천년왕국 등에 관련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성경주해학 교수 크리스토퍼 롤랜드(Christopher Rowland), 이탈리아 신흥종교 연구센터 센터장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영국 사우스웰 민스터 성당 신부인 매튜 에스키(Matthew Askey) 등 유명한 종교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인트로빈 박사는 <사람은 모두 원래의 성결함을 회복하였다>라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뮤지컬과 함께 “하나님나라시대 실루엣”이란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인트로빈 박사는 천년하나님나라, 즉 천년왕국 실현 가능성으로 청중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근년에 들어, 여러 가지 재난으로 지구촌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천체의 별들도 기이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고 성경 예언이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재난의 시대가 가까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대재앙이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 것인가? 천년왕국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어떤 사람이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번 심포지엄에서 인트로빈 박사는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비밀의 내용, 천년하나님나라, 즉 성경 계시록에서 예언한 그리스도의 나라는 대환란이 끝나고 땅에 이뤄진다고 했는데요. 이러한 사실은 사람의 운명과 종착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스 출처:

더보기:마시모 인트로빈 제1부: 거짓말과 폭력―크리스천을 박해하는 중국 공산당의 정체 폭로 (한국어 더빙)


산시성 멍융

솔직하고 고지식한 성격인 저는 이 악하고 부패한 사회에서 늘 업신여김을 당해 왔습니다. 세상의 그런 각박함을 뼈저리게 경험하며, 저는 인생이 참 무상하고 의미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교회 생활을 하며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평온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직 하나님만이 공의로우시고, 빛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만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동안 직접 체험하며,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자 구원이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저와 형제자매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중국 정부에 체포당해 박해를 받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2011년 1월 12일, 저와 형제자매 몇 명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차를 몰고 어느 지역으로 가는 것을, 누군가 경찰에게 신고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 정부에서 파견한 형사 경찰, 국가안전보위대대, 마약 단속반, 무장 경찰, 파출소 등 여러 부문의 병력이 십여 대의 경찰차에 나눠 타고 저희를 잡으러 왔습니다. 저와 다른 한 형제는 차를 몰아 그곳을 벗어나려 했지만, 경찰 네 명이 빠르게 달려들어 차를 가로 막았습니다. 그중 한 경찰이 다짜고짜 저희의 차 열쇠부터 뽑고는, 꼼짝 말고 차 안에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때, 여덟 명가량의 경찰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한 형제를 사정없이 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찌나 맞았는지 그 형제는 이미 아무런 미동도 없었습니다. 울분을 참지 못한 저는 차에서 뛰어내려 경찰들의 구타를 저지하려 했지만, 경찰은 제 팔을 비틀어 잡고 저를 한쪽으로 밀었습니다. 저는 경찰들을 향해 따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로 합시다. 어째서 사람을 때리는 겁니까?” 그러자 경찰들은 험악하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어서 차로 돌아가. 너는 조금 이따 두고 보자!” 그들은 저희를 파출소로 데려갔고, 차는 압류했습니다.

 

크리스천이 박해를 받고 체포되어 수색당하다 [사진제공: 동방번개(전능신교)]

저녁 9시경, 형사 경찰 두 명이 저를 심문했습니다. 저에게서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아무것도 듣지 못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망할 자식, 이따 본때를 보여 줄 테다!” 그들은 일단 저를 심문 대기실에 가둬 두었습니다. 밤 11시 30분, 형사 경찰 두 명이 저를 CCTV 카메라가 없는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한다는 걸 직감한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를 지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때, 자씨 성을 가진 경찰이 다가와 저에게 물었습니다. “요 며칠 사이 폭스바겐 제타 차량을 탔었던 적 있지?” 저는 그런 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화가 나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타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발뺌할 거야?” 그러면서 그는 거칠게 제 뺨을 후려쳤습니다. 얼굴이 타는 듯이 아팠습니다.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보자!” 그는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면서 폭이 넓은 혁대로 제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저는 참지 못하고 연이어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경찰들은 혁대로 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그들은 이어서 저를 이불로 덮어씌우곤 쇠몽둥이로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몽둥이를 휘두르다 지쳐 숨이 가빠질 지경이 되어서야 매질을 멈췄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은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온몸의 뼈들이 산산조각 난 듯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때는 경찰들이 왜 그런 방식으로 저를 때렸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제 피부에 구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불을 씌웠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CCTV 카메라가 없는 방에 가두고 입을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이불까지 씌워 가며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중국 경찰은 너무도 음험하고 악랄했습니다! 저를 때리다 지친 경찰 네 명은 방법을 바꿔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 두 명이 제 한쪽 팔을 등 뒤로 돌려 힘껏 위로 올리고, 다른 경찰 두 명은 제 다른 쪽 팔을 어깨 위로 넘겨 아래로 잡아당겼습니다(‘이랑담산(二郞擔山)’이라는 고문법인데, 보통 사람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아무리 위아래로 당겨도 제 두 손이 등 뒤에서 닿지 않자, 그들은 무릎으로 거칠게 제 팔을 밀어 댔습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두 팔이 모두 부러진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저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두 손은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봐주는 법 없이, 제가 더 고통스럽도록 저에게 꿇어앉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너무 아파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머릿속이 윙윙대며 울렸습니다. 의식도 점차 흐릿해져 갔습니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줄곧 병을 앓고 있었던 나지만, 이렇게까지 의식이 통제 안 되는 느낌은 처음이야. 설마 이렇게 죽는 건가?’ 더는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제 안에서 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알지 못한 채, 고난받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또 어떤 이들은 몹시 괴로운 마음에 죽고 싶어 하는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들은 의지가 없고 유약하며 무능한 겁쟁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이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방금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께 실망과 상심을 안겨 드리기만 할 생각을 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런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죽길 바라는 게 아니라 치욕을 견디며 사명을 다 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해 사탄과 전쟁을 벌이고,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해, 사탄에게 수치와 패배를 안겨 주길 원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빈다면 이는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것으로,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도리어 수치의 증거로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저는 조용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본성이 너무도 나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신을 위해 고난받을 각오도, 용기도 없었고, 육이 고통받자 바로 죽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은 하면 안 된다는 걸 이제는 알았습니다. 아무리 큰 고통을 받더라도 저는 굳게 서서 당신을 증거해 당신을 흡족게 해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 육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연약해져 있습니다. 제 힘으론 악마의 악랄한 고문을 이겨 내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으니, 제가 당신께 의지해 사탄을 이겨 승리할 수 있도록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시길 구합니다. 당신을 배신하지 않고 형제자매를 팔아 넘기지 않을 것을 목숨 걸고 맹세합니다.’ 하나님께 줄곧 기도하다 보니, 마음이 점차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숨이 끊어질 듯한 저를 본 경찰은 혹시 인명 사고라도 나서 책임을 물까 봐 서둘러 제 수갑을 풀어 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딱딱히 굳은 제 팔에 달린 수갑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 풀기가 어려웠습니다. 경찰 넷이 몇 분간 씨름한 끝에 겨우 수갑이 풀렸고, 그들은 저를 다시 심문 대기실로 끌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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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기도하며 말씀 보고 교제해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묵상하며 구하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 보네요

진리로 자유 얻고 하나님의 생생한 사랑 느껴요

다채로운 교회 생활, 찬양 방식도 다양하죠

나도 모르게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 찬양해요

규례와 속박 없이 진심으로 찬양하니 즐거워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니 참 행복해요

영원히 사랑하고 순종할게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의 은혜 깨달았어요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할게요

워십댄스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하리> 영어 찬양 (할렐루야)

2

진리 교제하면 성령 역사 얻고

체험 나누면 서로의 생명이 성장하죠

우린 모두 하나님나라 백성, 진심으로 하나님 사랑해요

한마음으로 본분 이행하니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보았어요

심판으로 정결함 받으니 하나님의 공의 보았어요

패괴 성품 벗고 새사람 되어 정직한 모습으로 살아요

진정으로 하나님 경배해야 하나님나라 생활이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니 참 행복해요

영원히 사랑하고 순종할게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의 은혜 깨달았어요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할게요

 

워십댄스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하리> 영어 찬양 (할렐루야)

3

함께 모인 형제자매들 수많은 곡절 겪었죠

정부의 박해, 정말 가증스러웠죠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에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기 위해 흘리신 피땀

다 헤아릴 수 없어요

우리와 함께 생활하며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죠

그 아름다운 시간과 삶 잊을 수 없네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니 참 행복해요

영원히 사랑하고 순종할게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의 은혜 깨달았어요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할게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니 참 행복해요

영원히 사랑하고 순종할게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의 은혜 깨달았어요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할게요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할게요

변함없이 하나님 찬양할게요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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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어디에

 

복음 영화 말세 복음의 강림<사랑의 사명>

영화 내용 소개: 

리머(李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예수님을 믿었고 16살에는 가정 교회의 동역자로 되어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하지만 날로 황량해지는 암담한 교회 상황으로 인해 그녀는 정말 고통스러웠고 막막했습니다……

그러던1999년, 그녀는 행운스럽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듣고 교회가 황량해진 원인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그 사역을 따르지 못해 성령 역사를 잃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쁨으로 이 좋은 소식을 수년간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던 교계의 형제자매들에게 알려 주었지만 오히려 비방과 모욕을 받고 내쫓겼습니다…… 몇 년간 많은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또 여러 차례나 종교계의 핍박과 저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리하여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 사랑의 격려와 말씀의 인도로 그녀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계속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체험 속에서 그녀는 기독교계의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고 하나님과 적이 되는 실질을 분명히 보게 되었고 또한 공의롭고 거룩하시며 아름답고 선하신 하나님의 실질도 보게 되었으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보살핌과 구원도 체험하면서 생명도 점차적으로 자라나게 되었고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알림:본 영상물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자체 제작한 내용이므로 청중이나 관중 또는 제3자로부터 어떤 명목으로든지 반대급부를 받지 않습니다. 자유자재로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단, 개인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저희 교회의 허락없이 본 영상물을 유통, 사용, 편집, 왜곡하실 경우 책임을 지게 되오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중국 공산당은 집권 후, 종교 탄압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시진핑이 집권한 후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거리낌 없이 가정 교회의 크리스천을 탄압, 체포, 박해하고 정부 관제하의 교회와 성당, 십자가도 강제 철거하고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이 잡히고, 감옥에 보내졌고 구타로 사망한 이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부의 체포망을 피해 도피 길에 올랐습니다. 궁지에 몰려 해외의 민주주의 국가로 망명하는 크리스천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중국 정부가 망명을 떠나는 크리스천들을 내버려 둘 리 있겠습니까! 중국 정부는 민주주의 국가를 외교적, 경제적으로 압박할 뿐 아니라 훈련된 스파이를 대거 파견해 크리스천을 감시합니다. 어떻게든 해외로 망명한 크리스천을 중국으로 송환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2018년 9월 초, 한국에서 크리스천 난민에 대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한 한국 여성이 한국으로 망명한 중국 크리스천들의 가족 10여 명과 함께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피난 온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들을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고 한국 정부에 이들을 중국으로 송환하라고 요구하여 크게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줄곧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이 중국 크리스천의 가족 10여 명을 데리고 시위를 벌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여성은 그 가족들을 전혀 알지 못하며 중국의 크리스천 탄압 상황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왜 중국 크리스천의 가족들을 모아 시위 해프닝을 벌였을까요? 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들을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에 본국 송환을 요구했을까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시위에 도대체 무슨 내막이 있는 걸까요?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두 분을 모셨습니다. 중국에 있는 이분들의 가족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이번 시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mail : godfootsteps.kr@gmail.com

연락처 : 070-7516-7062 /1566-2851

은혜로운 찬양 <묵묵히 모두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필요 주시네

사람 마음의 변화까지 모두 살피시고

위로하며 권면하시네

인도하고 빛을 주시네

그를 사랑하는 자, 그를 따르는 자에게

그는 아낌없이 그의 축복 모두 내려 주시고

그의 은혜, 그의 자비 내려 주시리

그의 소유, 어떠하심 모두 베푸시리

2

그의 마음에 관심 없어도 그는 인도하시고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우시네

그의 말씀 행하여 그가 예비하신 아름다운 종착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그를 사랑하는 자, 그를 따르는 자에게

그는 아낌없이 그의 축복 모두 내려 주시고

그의 은혜, 그의 자비 내려 주시리

그의 소유, 어떠하심 모두 베푸시리

3

그가 겪는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심정도

그는 내색하지 않으시네

아무도 몰라줘도 불평 하나 없으시네

사람이 깨달을 날만 기다리시네

그를 사랑하는 자, 그를 따르는 자에게

그는 아낌없이 그의 축복 모두 내려 주시고

그의 은혜, 그의 자비 내려 주시리

그의 소유, 어떠하심 모두 베푸시리

그의 소유, 어떠하심 모두 베푸시리

그의 소유, 어떠하심 모두 베푸시리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관련 내용 더 보기 : 하나님 나라  

성경 참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7~4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2~13)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며, 사람의 말과 행위를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드러낸 그런 말씀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현재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생명의 말씀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 실질 및 패괴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사상, 낡은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문화와 같은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결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의 사역이기도 하고, 제2단계 구원의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자신의 소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공의, 진노, 위엄, 심판, 저주인데 그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심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여 말한다. “왜 심판ㆍ저주를 통해야만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면 사람이 죽지 않겠는가? 사람을 심판하면 사람이 정죄받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또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 낼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해 내지만 이러한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시련은 사람 안의 어떤 정형을 겨냥한 것인가? 사람 안의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는 패역 성정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사람 안에는 뒤섞임이 많고 외식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시련하여 그 시련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네가 지금 그를 만족케 할 수 있다면, 이후의 시련은 너에게 있어서 온전케 하는 것이 된다. 만약 지금 그를 만족케 할 수 없다면, 이후의 시련은 너에게 있어서 시험이 되어, 너는 부지중에 넘어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데,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오지 못해 실제 분량이 없기 때문이다. ……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시련 가운데서 반드시 넘어진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련이 너에게 닥칠 때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너는 서지 못한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너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사람의 육체는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일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성품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고 선택한 이 무리 사람들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할 때를 빌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경력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최후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현재 너희 이 사람들은 바울의 이지마저도 갖추지 못하고 바울의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도 없으며 바울의 양심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너희를 언제나 좀 짓누르고 언제나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너의 영을 일깨울 수 있다. 너의 생명에 가장 유익한 것은 그래도 형벌과 심판이다. 필요할 때는 또 사실이 임하는 형벌을 좀 해야 너희가 철저히 탄복하게 된다. 너희의 본성은 형벌과 저주가 없으면 굴복하려고 하지 않고, 탄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없으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고 무가치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6)>에서 발췌

『나는 큰 붉은 용 국가에 강림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 우주를 향하였는데, 온 궁창까지 다 진동한다. 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쏟은 재난 속에서 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각종 ‘재난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이것은 내가 역사하는 방식이고, 사람에게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구원이고, 또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여전히 자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0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께 정복되는 과정은 마치 한차례의 승자전과 같다.

하나님 말씀은 마디마다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드러냈고 우리의 패괴 성정을 드러냈다. 일언일행, 일거일동에서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본성 실질을 그의 말씀 가운데서 드러나게 하여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하였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였다.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속셈과 목적,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정까지도 그는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 주어 우리를 만신창이가 되게 하였고, 게다가 심복구복하게 하였다. 그는 그에 대한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모독과 정죄를 형벌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눈에서는 우리가 옳은 게 하나도 없고 우리가 바로 숨 쉬고 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 대해 감히 그 어떤 무리한 요구나 의도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다. 일순간 우리의 마음은 평형점을 잃어 앞길을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지 몰랐고,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지 몰랐다. 마치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였고, 또 마치 우리는 주 예수와 ‘만난 적도, 알고 지낸 적도’ 없는 듯하였다. 눈앞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였고, 우리를 방황하게 하였다. 우리는 낙심하였고 실망하였으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이 생겼다. 우리는 쏟아 내려고 시도했고, 다른길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며, 더욱이 우리의 구주 예수를 계속 기다렸다가 그에게 속사정을 하소연하려고도 시도했다.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대범하였지만 마음은 전례 없이 낙담되었고,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아주 침착해 보였지만 마음은 바다가 뒤집어지듯이 갑절로 괴로움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우리는 모든 꿈과 희망이 빼앗겨 더는 지나친 욕망을 갖지 못하였고, 그가 바로 우리의 구주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그와 우리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는데, 심지어 아무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큰 좌절을 겪고 이렇게 큰 굴욕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거스를 수 없고 존귀한데,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얼마나 더러운지를 느끼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우리의 오만과 자대(自大)를 알게 하였고, 또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같이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더는 이러한 패괴 성정 가운데서 살지 않고 하루속히 이러한 본성 실질에서 벗어나 더는 그에게 미움받지 않고 혐오 받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구하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의 말씀을 듣게 하였으며, 더는 그의 지배와 안배를 거역하지 않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달갑게 그를 받아들여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걸어 나왔고, 지옥에서 걸어 나왔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걸어 나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이 무리의 사람들을 얻으셨다! 그는 사탄을 이기셨고 모든 원수들을 패배시켰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중국 경청

 

그 후에도 저는 계속 성경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예배드릴 때 교통하는 내용이 성경 말씀에 부합될 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성경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못 들은 척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형제자매들이 ‘각성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의 정형은 점점 더 좋아져 사람마다 얼굴에 기쁨이 넘쳤는데, 자신은 오히려 마음이 점점 더 우울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억지 웃음을 지으며 형제자매들의 안부를 물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예배에서 형제 자매들은 모두 흥미진진하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에 대한 터득과 인식을 교통하면서 저마다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였지만, 저는 그들이 교통하는 것을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어 목석같이 앉아 말참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바보처럼 옆에 앉아 있으면서 너무 슬프고 괴로워 마음속으로 주님께 부르짖을 뿐이었습니다. “주님! 예전에는 주님께서 늘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깨우쳐 주셨는데, 지금은 왜 깨우쳐 주시지 않으시나요? 설마 저를 버리신 건 아니겠지요? 주님, 주님은 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부디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제가 열심히 주님께 부르짖었으나 주님의 응답이나 위안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주님께선 날 버리셨나봐…’

집에 돌아온 저는 더 이상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침대에 엎드려 울며 불며 주님께 하소연 하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성경을 내려 놓고 주님을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주님을 믿어오면서 지금처럼 마음이 어두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주님! 제발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형제 자매들은 모두 그 새 말씀을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발하신 음성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을 읽고 다들 큰 수확이 있다며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흑암 속에 떨어져 주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막막하여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 지 모르겠나이다. 주여, <어린 양이 펼친 책>이 정말로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발하신 음성인가요? 만일 정말로 주님의 음성이라면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 역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여기까지 기도를 드리자 갑자기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이미 오래도록 문 밖에서 기다리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가슴이 뜨끔하며, 문득 제가 주님을 문 밖에 계시게 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자책과 뉘우침, 그리고 죄송함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는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급히 바닥에서 일어나 성경책을 꺼내 계시록의 3장 20~22절을 보았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저는 그것이 성령의 깨우침임을 확신하고는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회한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의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주님의 오심을 이렇게 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멀고 우매하여 주님의 음성을 알아 듣지 못하고 주님께서 문 밖에 서 계시게 하였습니다…제가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주님께 실망드렸습니다… 주님의 긍휼이 아니었다면 저는 계속 주님의 음성을 거절하고 어둠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고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부디 저의 과오를 덮어주시고 계속 저를 구원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후 제 마음은 한없이 편해지고, 가슴을 누르고 있던 큰 돌이 옮기운 듯 기분이 아주 홀가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지난 시간들을 모두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가 성경을 떠났다는 이 일에 곤혹을 느꼈습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하)

그러던 어느 하루,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것은 원칙적인 문제이다. …오랫동안 사람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방식(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인데,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떠나면 사교(역주: 사이비 종교)이고 이교(異敎)라고 하며, 설사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 해석을 기초로 한 책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주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고 성경을 먹고 마셔야 하며, 성경 이외에 또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을 숭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라고 한다. 성경이 생긴 이래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 것은 성경을 믿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낫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낫고,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낫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읽고 저는 마치 하나님을 직접 마주하여 가르침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 맞아. 내 마음속 생각은 하나님 말씀에서 밝히신 것과 똑 같아. 하나님을 믿으면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외의 다른 서적을 보면 안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여겼었지. 하지만 난 그래도 잘 모르겠어. 성경은 다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신 것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주님을 믿는 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럼 성경 앞에 돌아온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돌아온다는 것은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일까?’ 저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기록한 역사책에 속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옛 선지자의 예언들이 기록되었고, 여호와가 그 당시에 역사했던 말씀들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그 책을 ‘거룩하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다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칭한 것은 단지 피조물이 창조주에 대해 경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인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천서(天書)’라고까지 하였다. 사실, 그 책은 단지 사람의 기록일 뿐이지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친히 지도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칭한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 책을 대하는 존칭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공동으로 연구 토론한 다음 다시 결정한 것이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 사도, 예언자들의 기록을 후세들이 수집하여 편찬한,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거룩한 고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보기에 그 속에는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많은 심오한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후세들이 풀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책을 더욱더 ‘천서’라고 여기게 되었다. 거기에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 및 <계시록>까지 더해져, 그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떤 책을 대하는 것보다 각별했다. 그러다 보니 감히 그 ‘천서’를 해부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그 책이 너무나 ‘신성(神聖)’하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ㆍ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천고의 비밀을 밝혀 성경의 수수께끼도 풀렸고 제 마음속에 곤혹스러웠던 문제도 모두 풀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기록한 역사책에 속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셨던 사역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자 전 인류를 주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계속 전 인류를 인솔하고 공급하고 계셨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에서만 역사하신다고 할 수 있겠나요? 또 어떻게 성경 속에 있는 말씀만 하실 수 있겠나요? 사람들이 성경을 ‘성서’라 칭하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인해 성경을 이렇게 존칭하여 불렀지만, 사실 성경의 저자는 고대의 선지자와 예언가, 그리고 사도들이었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보다시피 성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한 권의 역사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5:39-40)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주 예수님의 말씀을 결합하여 대조해보니 주님의 말씀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재하실 수 있는데, 성경은 그런 사역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은 확실히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성경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논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지 하나님의 새 역사를 거부하면서 성경을 지켜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수록 성경의 실질과 내막에 대해 더욱 깨달아졌습니다. 또한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수년 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집했던 관점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면서 동등하게 대했던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떠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죠. 하지만 저는 사실 성경의 실질과 성경의 본래의 가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주님을 믿는 것과 성경을 믿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실제적인 뜻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진리인 양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며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우매무지하고 너무나 교만 방자하며 이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무지에 따라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정죄하시지도 않고 도리어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를 성경에서 조금씩 나오게 하셔서 하나님 보좌 앞에 오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아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성경의 내막과 실질에 대해서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닫고 있었던 마음의 문을 드디어 하나님께 열고 다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새 음성과 말씀 속에서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하나님께 충심으로 되는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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